학문적인 노동 심리학을 미국 사람 엔지니어 프레드릭 테일러가 시작한 것으로 한다면 그가 제안한 노동합리화가 대단한 결과를 초래하여 작업관리의 새로운 시대를 열었다는 사실만은 틀림이 없다. 비록 테일러주의가 노동 심리학에서 파생된 독창적인 결과는 아니었지만 그는 당시의 심리학을 최대한으로 활용하였다. 산업기술개발이 지배적으로 활성화됨에 따라 응용하기에 특히 적합하였던 경험적-실험적 심리학이 널리 보급되었으며, 이로 인해 능률향상을 위한 실제적인 작업 조직화 활동이 학문적인 기반을 확보하였고 법적으로 합법화되었다. 알프레드 비네와 빌리암 슈테른이 경험을 바탕으로 하여 창시하였던 차이심리학을 배경에 두고 후고 뮌스터베르크는 경제분야에 적용할 수 있는 심리 공학을 개발하였다. 노동심리학은 서로서로 연관된 두 개의 핵심분야인 심리적 적성 진단과 심리적 작업관리로부터 발전되었다. 전자인 심리적 적성 진단이 인간이 작업에 어떻게 적응하는가 하는 것을 다룬 반면에, 후자인 심리적 작업관리는 인간에게 적합한 관리 내지는 능률을 최적화하는 노동 수단과 노동조건을 다뤘다 여기에서 주관적 심리 공학과 객관적 심리 공학이라는 표현이 사용되었다. 특히 관청과 군대 부문에서는 수천 년의 오랜 전통을 가진 것으로 계급이 고정되었던 전통사회에서 신분에 합당한 직업을 자유롭게 정하는 일반적인 방법으로 일찍부터 발달하여 왔다. 제1차 세계대전이 터지자 군사적으로 그리고 경제적으로 중요한 자리들을 가능한 빠르게 최적임자로 채우거나 혹은 다시 채워야 할 필요가 생겨서 개발이 가속화되었다. 이런 최적화를 이루는 데에 당연히 검사장치들이 쓰였다. 기제는 자동으로 기록하는 기계화된 검사장치를 구성하도록 요구하면서 언급하기를 피시험자를 더 신속히 걸러내기 위하여 최소의 공간에 최대한의 장치를 집어넣고 통로를 좁혀서 회사 조직에서처럼 공간을 최대한 효율적으로 좁게 사용하여야 한다고 하였다. 심리학적 작업관리에는 인간을 기계와 유사하게 즉 관절, 축, 근육, 그리고 감각기관의 어떤 체계로 이루어진 것으로 이해하는 심리 공학적 인간상이 바탕에 깔려있었다. 노동에서 경험한 개인적인 견해, 즉 기쁠 때와 슬플 때, 용기 있을 때와 나약할 때 작업자가 자기 업무에 대하여 감정적으로 나타내는 의사표현은 과학적으로 하찮은 것이라 여겨져서 분명하게 배제되었는데 이 이유는 부분적으로는 실험심리학으로 정확하게 파악하지 못하도록 저항하는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며 작업자의 성격이 대체적으로 그의 작업력과 동일시되었지만 성격 영역에 관해서는 노동 심리학이 연구할 것 이 본질적으로는 아무것도 없기 때문이었다. 작업의 내용을 무시한 채, 작업인력의 피로, 탈진, 그리고 회복 등 근육 활동 기록계로 측정하는 근육 성능 연구로만 작업관리 문제가 집중되었다. 이런 종류의 문제를 이미 19세기 20세기로 전환하던 시기에 에밀 크레펠린도 관심 있게 다뤘기 때문에 후고 뮌스터베르크 이외에 에밀 크레필린도 역시 근대 노동 심리학 창시자 가운데 하나라고 할 수 있다. 집단 연습장소에서 작업지도를 편리하고 효과적으로 하기 위하여 작업관리 연구가 많은 경우 서로 밀접하게 연결되어 운영되고 있었다. 그러나 오늘날의 시각에서 되돌아보면 개인심리학 및 차이심리학으로 편파적으로 수행하였고 경제적 최적화까지 담당하였다는 점이 주목을 끈다. 개인 심리학 쪽으로 잡았던 방향은 특히 1930년대에는 엘톤 메이요가 개발한 작업 집단 분석으로서 1940년대에는 집단역학연구소에서 쿠르트 레빈이 수행한 사회심리학의 영향으로 극복되었거나 수정되었다. 특히 테일러주의가 가지고 있던 착취 경향과 관련하여 이 분야의 목표를 올바르게 설정하기 위한 규범적인 의논이 이미 일찍부터 있었다.
심리학자와 심리학
노동 심리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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