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어만 폰 헬름홀츠는 1821년에 포츠담에서 태어나 베를린의 왕립외과의학 프리드리히 빌헬름 연구소에서 의학을 공부하였으며, 1848년에 베를린 예술아카데미의 해부학 교수가 되었고, 1년 뒤에 쾨닉스베르크 대학에서 생리학 비정규 교수로 부름을 받은 뒤, 1851년에는 정교수가 되었다. 1855년에는 본 대학에서 해부학과 생리학, 1857년에는 하이델베르크 대학에서 생리학 교수로 초빙되었다. 1871년에 하인리히 마그누스의 후임자로 프리드리히 빌헬름 대학의 물리학과 정교수직을 물려받은 뒤 1888년까지 유지하고 있었다. 1894년에 사망할 때까지 물리 기술 제국협회 회장으로 일하였다.
헤어만 헬름홀츠는 19세기에 다방면으로 심리학에 영향을 끼쳤고 또한 심리학과 관계를 맺었따. 심리학의 중심적인 연구자 가운데 한 사람이었던 빌헬름 분트는 하이델베르크 대학 생리학 연구소에서 헤어만 헬름홀츠의 지도 아래 1858년에서 1865년까지 조교로 있었다. 빌헬름 분트가 새로운 실험심리학 프로그램을 만들고 있는 동안, 헤어만 헬름홀츠의 지각이론에 대한 논문과 인간정신과 동물정신에 관한 강의가 1862년과 1863년에 각각 발표되었다. 1890년에 창간된 감각기관의 심리학과 생리학의 학술지의 발행인들인 헤어만 에빙하우스와 아르투어 쾨니히가 특히 게오르크 뮐러, 빌헬름 프라이어, 칼 슈툼프 등을 놔두고 헤어만 헬름홀츠가 공동체의 발행인 일을 맡도록 지명하였고, 헤어만 헬름홀츠는 이 참에 이 학술지 첫 호의 첫 논문으로 연구결과를 발표하였을 뿐만 아니라, 1894년까지 지각심리학에 관한 연구결과 네 편을 더 발표하였다. 저명하고 뛰어난 업적이 있는 자연연구자인 헤어만 헬름홀츠가 지각연구를 수행한 끝에 물리학적이며 생리학적인 영역으로부터 순전히 심리학적인 연구 영역을 갈라냈다. 이로써 심리학이 연구성과가 많은 자연과학과 직결되어 독자적인 연구성과가 많은 자연과학과 직결되어 독자적인 임무 영역을 확보하게 되었다. 게다가 헤어만 헬름홀츠는 지각현상을 설명하기 위한 새로운 심리학 이론을 세워 많은 주목을 받았다. 일찍이 1852년에 쾨닉스베르크 대학에서 인간 감각지각의 본성에 관하여라는 제목으로 교수자격 취득 강의를 가진 이후에 폭넓은 지지를 받은 1855년의 연설 인간의 시각에 관하여에서 심리과정의 본성이란 외부세계를 지각할 때 감광 작용이 변환시켜 놓은 것을 아주 어려운 과제로서 규명하는 것이며, 이 어려운 과제는 유감이지만 심리학자들이 도와줄 수 없는 생리학 연구가 보완하여야 하는 것이라고 하였다. 많은 주목을 받은 헤어만 헬름홀츠의 지각이론의 바탕은 스승인 요하네스 뮐러한테로 거슬러 올라간다. 요하네스 뮐러의 견해에 따르면, 감각의 질은 해당 감각기관의 신경기관이 격양된 상태에 따라 다르다고 하였다. 경험에서 도출되는 방법으로 소위 말하는 무의식적인 판단이 대부분 이루어진다. 귀납적 유추법과 동일하게, 정상상태에서 벗어난 자극을 정상적인 자극처럼 다르며, 그리고 이런 방식으로 언제나 외부환경을 지각한다. 헤어만 헬름홀츠는 경험주의적 감각지각 이론을 제안하면서 우리의 정신이 가지고 있는 불분명하지만 잘 알려진 능력처럼 감각지각이 발생하는 데어 적어도 어떠한 다른 힘도 필요하지 않다는 것을 입증하려 하였다. 1850년대에 시작하여 부분적으로는 1860년 이전에 이미 출간된 헤어만 헬름홀츠의 초기 감각심리학 연구성과는 본질적으로 에른스트 베버가 도입한 정량적 실험적인 감각심리학의 연구 전통을 더욱 확대한 것이라고 정리할 수 있다. 물리학과 생리학으로부터 순전히 심리학적인 연구영역을 독립시킨 헤어만 헬름홀츠의 체계적인 구획작업으로 그의 방법론을 본보기로 삼고 뒤이어 수행되었던 연구 활동들이 학문적인 근거를 가질 수 있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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