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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학자와 심리학

쿠르트 레빈

by ▒▧∮˘¤∂ 2021. 12.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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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르트 레빈은 1890년 9월 9일에 당시 프로이센의 포젠이었던 모길노에서 태어나서 1947년 2월 11일에 56세를 일기로 미국 보스턴 근교의 뉴턴빌에서 사망하였다. 누위와 두 남동생이 있었고, 부친 레오폴드 레빈은 레빈의 말대로 지주며 상인이었으며 부모와 할아버지 항렬의 네 분 모두 유대인이었다. 그는 유대식으로 교육을 받았고 스스로도 유대인이라고 인식하였다. 1905년에 가족이 베를린으로 이사하였다. 쿠르트 레빈은 처음에 동네 의사가 되려 하였으나 프라이부르크 대학, 뮌헨 대학 그리고 베를린 대학에서 의학 강의뿐만 아니라 생물학 및 철학 강의도 들었다. 제1차 세계 대전이 터지자 쿠르트 레빈도 수많은 젊은이들처럼 군대에 자원하여 1914년부터 포병대에서 철십자 훈장을 빛내며 소위로 제대하였다. 이미 일선 장병 휴가 기간 중에 칼 슈툼프의 지도 아래 박사학위 논문을 마무리 지었다. 에른스트 카시러의 강의에 크게 감명을 받았고, 특히 게슈탈트 심리학자들인 볼프강 퀼러, 막스 베르트하이머 그리고 쿠르트 코프카가 이룬 연구업적의 덕을 보면서 쿠르트 레빈은 게슈탈트 심리학적인 관점에서 먼저 의지심리학을 연구하였다. 그리고 차근차근히 자신의 장이론을 개발하였다. 현재의 관점에서도 마찰, 집단과정, 혹은 심리적 퇴행 같은 아주 색다른 분야들을 이론적으로 파악하고 해석하였다는 점이 대단한 일이었다. 쿠르트 레빈은 일생동안 활동영역을 여러 번 바꿨는데, 역학이론, 위상심리학, 벡터심리학에서 시작하여 마침내 장이론으로 마무리 지었다. 생애의 마지막 기간 동안에는 장이론 개념에 깊이 빠져서 앞서 수행하였던 연구들을 장이론적 견지에서 재해석하였다. 쿠르트 레빈은 나치 정권의 실상을 재빨리 알아차리고  일찍이  1933년 8월에 미국으로 이민을 나가서 심리학으로는 이름나 있지 않던 대학 이타카에 있는 코넬 대학에 자리를 잡고 쓸 수 있는 만큼의 연구재원을 기부금을 마련하였다. 미국에서 쿠르트 레빈은 발달심리학 및 교육학 쪽으로 크게 방향을 돌려서 집단역학에 대한 개념을 개발하였고 그리고 레온 페스팅어, 도윈 카트라이트, 로자 바카, 로널드 리피트 등 수많은 제자를 통하여 심리학, 특히 사회심리학에 자신의 발자취를 뚜렷이 남겨놓았다. 쿠르트 레빈의 많은 제자들은 어떤 일에 충분히 그리고 전적으로 관여할 때 보여주었던 활기, 약간의 체계없음, 사회적 재능 그리고 철저한 사전 준비를 쿠르트 레빈의 장점으로 꼽았다. 크르트 레빈은 확실히 다방면에 관심이 있었다. 그는 취미로 항해를 즐겼고 화가 에릭 리히터와 친하게 지냈으며, 베를린에서는 다른 사람이 아닌 바로 바우하우스 건축가 페터 베렌스에게 현대적인 집을 짓도록 하였고 내장 작업은 나중에 미국에서 함께 일했던 젊은 마셀 브류어에 맡겼다. 독일에서처럼 미국에서도 쿠르트 레빈은 노동심리학을 연구하였다 쿠르트 레빈과 함께 일할 때 그리고 그의 저작에서 사람들은 독일을 탈출하도록 하였던 유대적인 특성과 마주치곤 했는데 특히 미국에서 유대적 교육문제에 관하여 발표한 어느 한 무리의 논문에서도 또 한 이 유대 특성을 읽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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