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비드 카츠의 일생
다비드 카츠는 1884년 10월 1일에 헤쎈 주의 카쎌에서 8남매의 일곱 번째로 태어났다. 아버지 이삭 카츠는 발덱 지방의 작은 마을인 만더른에서 성장하였으며 베르트하임 집안에서 시집온 어머니 마틸데는 카쎌 사람이었다. 그들은 정통 유대 가정이었다. 다비드 카츠는 다른 손위 형제들처럼 고등학교를 다 마치지 않고 어떤 일자리에 취직하기로 약속해 놓고 있었으나 다행히 고등학교를 졸업할 수 있었다.
1902년부터 괴팅엔 대학에서 그리고 1903,1904년 겨울학기를 베를린 대학에서 공부하고 1906년에 박사학위를 마쳐다. 대학에서 여러 은사들 가운데 게오르크 뮐러의 영향을 가장 크게 받았다. 1907년 괴팅엔 대학 심리학연구소의 조교가 되었고 다음 해 로자 하이네가 오데싸에서 괴팅엔 대학으로 심리학을 배우러 왔다. 둘은 사귀기 시작하여 1919년 1월 30일에 결혼하였다. 많은 논문과 책을 두 사람이 함께 발표하였으며 1953년 2월에 다비드 카츠가 사망하자 로자가 그의 책들을 새롭게 증보하여 발간하였다.
다비드 카츠의 저서
1911년에 다비드 카츠는 색깔세계의 구성을 발간하였는데 이것은 1930년에 나온 제2판의 제목으로 원제목은 더 길고 포괄적이었으며, 이 책은 영어로도 번역되었다. 이 책으로 정교수 자격을 획득하였으며 또한 심리학에 가장 크게 공헌하였다. 다비드 카츠의 저작 목록에는 33권의 책과 196편의 논설이 있는데 독일어 이외에도 영어, 핀란드어, 프랑스어, 히브리어, 이탈리아어, 일본어, 노르웨이어, 스웨덴어 그리고 스페인어로 소개되었다.
1905년과 1906년에 다비드 카츠는 랑엔샤이트 출판사의 자회사인 멘토 출판사에 작은 책 두 권의 원고를 건네주었다. 학생들을 위한 수학과 라틴어 참고서로서 과학서적이 보통 4판을 넘지 못하던 때에 이 책들은 최소 11판과 8판을 각각 기록하였다.
제1차 세계대전 동안 다비드 카츠는 먼저 적십자에 근무하였다가 동부전선과 서부전선에서 음향측정부대의 포사수로 복무하였고, 게다가 특히 하노버 공과대학에서 절단장애자를 위한 심리전문가로 일하였다. 전쟁 종료 직전인 1918년에 다비드 카츠는 괴팅엔 대학의 교수가 되었고 1919년에는 레슈톡 대학 신설분야의 교수가 되어 거기서 1920년에 아들 테오도어가 그리고 1922년에는 율리우스가 태어났다.
다비드 카츠의 특성
다비드 카츠가 특히 몰두하였던 심리학의 분야들로는 지각 심리학에서는 색깔세계의 구성에만 몰두한 것이 아니라 촉각, 후각, 미각도 연구하여 논문과 저서가 많이 있었으며 그 밖에도 그는 실험심리학자, 아동심리학자 및 동물심리학자라고도 할 수 있었다. 음악을 대단히 좋아하여 베토벤을 최고로 여겨졌으며, 소묘 그림과 화가로서의 재능도 있어서 남아 있는 작품을 보면 그의 재능을 뚜렷이 알 수 있다. 다비드 카츠의 유산 가운데 대략 20여 편의 짧은 과학필름이 있었다.
그의 대부분의 과학도서처럼 이 필름들도 스톡홀름 대학 심리학연구소에 있으나 유감스럽게도 잘 관리되고 있지 않다. 얼마 되지 않는 나머지 책들은 스웨덴 국립도서관으로 보내졌고, 몇몇은 다비드 카츠가 두 아들에게 주었다. 다비드 카츠는 미국에 두 번 갔는데 1929년의 첫 번째 방문 때는 부인을 놓아두고 혼자서 메인 주 오로노 대학에 객원교수로 그리고 1950년의 두 번째 방문에서는 부인과 함께 캘리포니아 버클리 대학에 객원교수로 갔다. 1951년 스톡홀름에서 열린 제13차 국제 심리학대회에서 회장이 되었고, 1952년에 명예교수로 함부르크 대학에서 몇 달을 보낸 다음 스톡홀름으로 되돌아온 지 얼마 되지 않은 1953년 2월 2일에 사망하였다. 다비드 카츠는 예루살렘대학에서 심리학 교수로 오라고 세 번이나 제안을 받았고 마지막엔 명예교수로 초빙을 받았지만 건강 때문에 사양해야 했다. 다비드 카츠와 부인 로자 카츠는 스톡홀름의 어느 유대인 공동묘지에 잠들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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