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헬름 분트의 업적
빌헬름 분트는 심리학을 제도화하였으며 이로써 20세기의 효과적인 직업교육에 필요한 전제조건들을 마련한 것이었다. 앞서간 건구자들이 이룩한 필생의 업적을 확장하면서, 기초와 방법론을 내재하고 있으며 게다가 인류의 필생 문제를 극복하는 데에 결정적인 기여를 할 자격이 있는 학문으로서 심리학이 발전하도록 전환점을 만들어 준 사람이 바로 빌헬름 분트였다.
이미 일찍부터 자연과학을 본보기로 삼아 심리학을 발전시키려는 생각을 가지고 있던 빌헬름 분트는 심리학의 발전 수준에 알맞으면서도 사람들에게 지침이 될 만한 방법론적 기반을 마련하겠다고 구상하고서, 심리학적으로 가장 의미가 있는 저서 생리심리학의 개요를 1874/1875년에 발간함으로써 실험심리학을 독자적인 과학 영역으로 창조하였으며 1879년에 라이프치히 대학에 세계 최초의 심리학연구소인 실험심리학 연구소를 세웠다.
빌헬름 분트의 또 하나의 커다란 명예는 다른 무엇보다 1883/1884년에 국가로부터 대학기관의 하나로 공식적인 승인을 받을 때까지 이 연구소의 시설을 개인적인 재력으로 갖추고 운영하였다는 것이다. 이 연구소는 얼마 안 되어 수십 년에 걸쳐 인기 있던 실험심리학 분야의 연구, 강좌 및 훈련의 세계적인 중심지가 되었으나, 그래도 언제나 철학 강좌의 다양한 활동 속에 들어있는 작은 활동일 뿐이었다.
문화심리학 체계 안에서 발달사에 바탕을 두고 완성한 민족 심리학을 기반으로 하여, 빌헬름 분트는 생애 마지막 수십 년 동안에 시간과 정력을 기울여서 1912/1913년에 발간한 민족 심리학의 요점의 형태로 프로그램을 기획하였는데 이 프로그램은 역사 심리학의 관저에서 보면 오히려 19세기에 적합해 보였지만 한편으로는 사회 역사적인 변화에 따라 정신적인 요구 내용도 함께 진보한다는 진보적인 사상도 담겨 있었다.
이런 의미에서 빌헬름 분트는 실험심리학을 개인심리학의 바탕으로, 그리고 문화사에 바탕을 둔 민족심리학을 심리학의 최고봉으로 간주하였다. 심리학의 한 부분인 민족 심리학은 이미 지난 19세기의 취향과 대체적으로 잘 맞아 떨여졌다.
심리학사에서 빌헬름 분트와 그의 연구소는 당시 유리하게 펼쳐졌던 역사적 정세에 힘입어서 더욱 중요한 의미를 갖게 되었다. 산업혁명과 전례 없는 사회적 약진의 시대에 과학, 특히 자연과학의 개화기가 펼쳐졌고, 이에 발맞춰 심리학이 올바른 학문으로 발달할 수 있도록 그 기반을 마련하려는 노력이 경주되었다.
특히 의학분야에서 실험심리학이 이룬 높은 연구성과 구스타프 페히너가 창시한 정신물리학의 활동을 고려하여 볼 때 심리학을 자연과학으로 발전시키려는 노력이 뚜렷한 시기였다. 빌헬름 분트는 헤어만 헬름홀츠, 로버트 분젠, 그리고 필립 폰 욜리 등을 꼽을 수 있는 의학적, 자연과학 학파에 속한다. 라이프치히 대학 철학과 교수진이 생리학 교육을 받은 심리학자를 초빙함으로써, 발달하고 있는 자연과학이 철학과 심리학에 어떤 영향을 미칠 수 있도록 노력을 기울인 점도 또한 빌헬름 분트에게는 더할 나위 없이 좋은 활동 여건이었다.
빌헬름 분트의 결론
빌헬름 분트의 결론은, 심리학이 독립적인 학문이라고 주장하기 이전에, 반드시 이론적으로나 그리고 방법론적으로나 통일되어 있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이었다. 이것은 이론적, 방법적 기초가 모두 충분하지 않다고 본 응용심리학에 많은 노력을 경주하고 있는 것만큼이나, 연구방법을 엄정하게 지키지 않는 것을 빌헬름 분트가 얼마나 혐오하고 있었는지를 분명하게 보여주는 말이었다. 이를 바탕으로 하여 뷔르츠부르크 학파와 벌인, 혹은 지그문트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과 벌인 논쟁은 세계적으로 유명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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