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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학자와 심리학

심리전문가와 음악가

by ▒▧∮˘¤∂ 2022. 1.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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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학의 역사를 들여다보면 심리학과 음악 사이에 많은 연계성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크리스티안 폰 에렌펠스가 게슈탈트에 대한 정의를 설명하면서 대학 초년생들에게 직접적인 관계 하나를 가르쳐다. 게슈탈트는 초합성과 이조성의 특징을 가지고 있다. 크리스티안 폰 에렌펠스는 "노래는 즐겁다"의 멜로디를 사례로 꼽았는데 멜로디는 낱낱 음을 합한 것 이상이며, 다른 음조로 부르더라도 게슈탈트를 잃지 않는다고 하였다. 첫 번째 소설 "노래는 즐겁고나 산 넘어 길"을 C장조로 그다음에 F장조로 연주할 때 두 번 모두에서 멜로디는 똑같았지만 먼저 연주되던 어떤 음도 나중에 다시 쓰이지 않는다고 하였다. 크리스티안 폰 에렌펠스가 멜로디를 설명 사례로 고른 것은 전혀 우연이 아니었다. 그는 매우 음악적이었고 안톤 브루크너에게서 작곡을 공부하려 하였으며 게슈탈트 성질에 관한 논설을 썼을 바로 그때에도 방대한 양의 가극 각본을 썼었다. 420쪽에 달하는 포괄적인 책을 비유적 드라마 - 작곡가를 위하여지었음이라는 제목으로 1895년에 출간하였다. 그가 쓴 가극 극본들은 1904년부터 1925년까지 프라하 또는 엘버펠트 같은 큰 무대에서 공연된 리하르트 바그너 스타일 오페라의 바탕이 되었다. 게슈탈트 심리전문가들과 전체성 심리전문가들 가운데에서 음악재능이 더 많았던 사람들을 찾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다. 크리스티안 폰 에렌펠스의 학문적 은사이며 게슈탈트 심리학 그라츠 학파의 창시자인 알렉시우스 폰 마이농도 음악을 공부하려 했고 그의 몇몇 음악작품들은 지금도 남아 있다. 헤어만 폰 헬름홀츠와 칼 슈툼프가 소리지각에 관한 일을 하였을 때 베를린 대학에 음향자료보관소를 설립하려는 칼 슈툼프의 행보가 처음에는 심리학계 내부에서조차 이상하다고 여겨졌지만 그러나 곧 정당한 일로 밝혀졌다. 에리히 호른보스텔은 교육받은 것으로 보면 음악가가 아니고 화학자였지만 열정적인 헌신으로 이 음향자료보관소를 설립하였고 음악학에 관한 대단히 많은 연구결과를 발표하였다. 그때까지 게슈탈트 심리전문가들이 주로 광학 지각에 종사하였지만 에리히 호른보스텔의 업적을 계기로 하여 게슈탈트 심리학이 음향 영역으로까지 확장되었다. 볼프강 쾰러 그리고 펠릭스 크뤼거처럼 낳은 게슈탈트 심리전문가와 전체성 심리전문가들도 매우 음악적이었지만 이것은 그리 우연한 일이 아니었다. 왜냐하면 당시 상류사회에서는 글 쓰고 시 짓고 음악 연주하는 것이 오랜동안 일상적이었기 때문이었다. 요한 헤어바르트도 작곡만 한 것이 아니라 음악 연주가로서도 매우 높은 평가를 받았으며, 이미 학생 때부터 자부심을 가지고 편지왕래로 자신이 작곡한 곡을 출판인들에게 제안하였다. 그러나 밖으로 드러난 것은 오직 라이프치히에서 퀴넬이 발간한 피아노 소나타곡 하나였다. 옛 세대 독일의 심리전문가가가 음악심리학이라는 표제어를 보면, 음악심리학, 절대 청력, 음악적 창의성 등등에 관한 두꺼운 책을 여러 권 저술한 알버트 벨렉을 생각해 낼 것이다. 알버트 벨렉은 예술가들의 창의적인 창작활동이 생겨난 발자국을 따라가 보기 위하여 예술가들에게 편지로 그들이 어떻게 착상을 하였는지 특별히 물어보았다. 그러나 함부르크의 정신과 의사 뷔르거프린츠는 알버트 벨렉의 연구를 비판적으로 평가하면서 한스 피츠너를 인용하여 알버트 벨렉을 크게 평가절하하였다. 알버트 벨렉은 철학과 연계하여 음악학과 문학을 프라하 대학과 빈 대학에서 공부하였고 또한 작곡과 지휘를 프라하의 국립 음악학교에서 공부한 뒤 1926년에 탁월한 성적으로 졸업한 사람이었다. 빈 대학에서는 이중감각과 프로그램 음악에 관한 연구로 박사학위를 취득함으로써 음악학과 심리학 사이의 연관성을 찾으려 하였던 커다란 한 무리 작업의 시작을 만들어 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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