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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학자와 심리학

장 삐아제

by ▒▧∮˘¤∂ 2021. 12.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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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 삐아제의 생애

장 삐아제는 1896년 8월 9일에 스위스의 작은 대학도시 뇌샤텔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중세 문학을 전문으로 하던 역사가였는데 장 피아제의 설명을 빌리면 진지하며 비판적인 분이었고 무엇보다도 아들에게 체계적으로 일하는 것의 가치를 가르쳐준 분이었으며 어머니는 지적이며 활동적이고 종교적이며 실제로 무척이나 친절하신 분이었다. 어머니의 신경증 기질 때문에 가족들의 생활이 때때로 아주 힘들었다. 그래서 장 삐아제는 이미 어렸을 때부터 다른 아이들처럼 뛰어놀지 못하고 진지한 일에 빠져들었으며 아버지를 본받아서 학문의 세계로 달아났다.

 

과학자로서 장 삐아제가 이룩한 첫 번째 성공작은 1907년에 있었다. 11세 때 어느 공원에서 백피증에 조금 걸린 참새를 관찰한 내용이 뇌샤텔에서 발행되는 자연사 전문지 전나무 가지에 한 페이지 꽉 차게 소개되었다. 같은 해에 장 삐아제는 고향 도시의 자연사박물관 관장으로부터 조류, 화석, 그리고 조개 수장품들을 일주일에 두 번씩 개관시간 이외의 시간에 연구하여도 된다는 허락을 받았다. 이후 4년 동안 실습생으로서 관장을 도와 수장품을 정비하였으며 자유시간에는 연체동물을 찾아다니는 일에 몰두하였다.

 

이런 초기 훈련기간이 지난 뒤에 장 삐아제는 연체동물학 분야에서 전문가가 되어 1915년까지 혼자서 22편의 논문을 발표하였다. 주네브 자연사 박물관장이 장 삐아제의 발표 업적을 보고 연체 동물 수집 위원 자리를 제안하였으나 아직 학교에 다녀야 한다는 이유로 사양하였으며, 외국 연구자들로부터의 초청도 여럿 있었으나 청소년 시절을 거기다 써야 하는지에 대한 확신이 서지 않아서 역시 사양하였다. 스위스의 학자이며 그의 대부였던 사무엘 코너트는 어린 장 삐아제가 너무 일찍 전문가가 되는 것을 걱정하여 장 삐아제의 흥미를 철학으로 돌려주려고 앙리 베르그송의 저술을 소개해 주었고, 이것이 장 삐아제가 생물학과 철학, 특히 인식론과의 결합에 평생토록 종사하는 계기가 되었다. 지식발달 문제 그리고 현실을 이해하는 인간의 능력에 관한 근본적인 문제에 푹 빠졌으며 이문제를 해결하려면 철학은 너무 사변적인 반면 개별과학들은 때때로 너무 사실에 얽매여 있기 때문에 철학과 개별과학이 반드시 결합하여야 한다고 생각하였다.

 

1915년에는 김나지움 졸업논문 준비뿐만 아니라 연체동물 연구, 집중적인 철학강의 그리고 자신의 생각을 글로 쓰는 일 등 과로로 건강을 크게 해쳐서 학교를 마치고 나서 1년 동안 산속에서 휴양을 해야 했다. 쉬러 와있으면서도 여기서도 무언가 해야 한다는 생각이 그를 괴롭혔다. 유혹을 이기지 못하고 철학적인 책 탐구를 써서 1917년에 발간하였는데 학문적으로 웃음거리가 되지 않으려고 신중을 기하여 소설의 형태로 썼다. 이 전략이 효과가 있어서 한두 명의 격노한 철학자를 제외하곤 아무도 이 책이 그가 쓴 작품임을 알아채지 못하였다고 자서전에서 담담히 말하였다.

 

산에서 돌아오자마자 뇌샤텔 대한 자연과학 분야에 등록하여 대학공부를 시작하였다. 스위스 발리 지방의 연체동물에 관한 내용으로 1918년에 박사학위를 받고 자연과학 과정을 마친 뒤에 철학과 심리학에 대한 관심이 너무 커서 G. E. 립스의 심리학 연구실, 브레슈너의 심리학 연구실, 그리고 오이겐 블로일러의 정신병원에서 일하려고 취리히로 갔다. 여기서 정신분석학과 관계를 맺어서 지그문트 학술지 이마고를 읽었고 피스터와 칼 융의 강의를 들었다. 장 삐아제는 파리에서 시몽한테서 일을 하면서 비네 검사를 프랑스에 적용시키는 일을 맡았지만 이 일보다는 아동들이 대답할 때 하는 실수의 원일 연구하는 것에 더 흥미를 가졌다. 여기서 그는 자기만의 독특한 연구분야인 아동들의 사고발달 분야를 발견하였다.

 

1924년부터 1932년 사이에 아동들의 사고 발달에 관한 결과를 다섯 권의 책으로 발표하였다. (언어와 사고, 판단과 추론, 아동들의 세계관, 물리적 인과, 도덕적 판단) 장 삐아제는 초기 저서들의 결함이 방법적인 데에 있었다고 보았다. 특히 아동들의 언어 표현을 너무 임상적 방법으로 다루었다는 점, 그리고 대상에 대하여 훗날처럼 구체적인 조작과 실험을 강력하게 하지 않았다는 점에 있었다고 보았지만, 이 것은 소아에서 두 살까지의 사고 과정에 대한 연구에서 어느 정도는 피할 수 없는 것이었다.

 

장 삐아제의 이론

장 삐아제는 1924년에 발렌티네 샤테니와 결혼하여 세 아이의 아빠가 되었고 자녀들의 유아기와 소아기 때의 행동을 조심스럽게 관찰하고 기록한 뒤, 이론을 가시화 한 논문에 실제 사례로 사용하였다. 오늘날 심리학 교과서 어디서나 유아부터 성인까지의 인지발달 4단계에 관한 장 삐아제의 이론이 소개되어 나온다.

 

제1단계 감각동작적 지능기(0-2세), 제2단계 전조작적 사고기(2-7세), 제3단계 구체적 조작기(7-11세), 제4단계 형식적 조작기(대략 11세부터). 각 단계에 나타나는 나이는 그의 전체 업적을 충분히 정리한 다음 도출한 것이 아니고 어느 정도 대략적인 것이었기 때문에 모든 단계이론가들이 각 단계에 나타난 숫자를 줄여보려는 숫자 놀이의 위험에 빠져버렸다. 각 단계에 부여된 나이 구분을 장 삐아제는 단지 대략적인 어림수로 생각하였으나 다른 사람들은 종종 확정된 것이라고 잘못 이해하여 경험적인 근거를 제시하면서 반박하였다.

 

장 삐아제의 연구성과

후기저작에서 장 삐아제는 상대적으로 추상적인 문제들 예를 들면 숫자개념과 등급능력 같은 문제로 방향을 돌려서, 연구한 사고내용을 수학적 내지 자연과학적으로 뿐만 아니라 이론적으로도 설명하였다. 장 삐아제는 여러 분야에 걸친 연구를 실제로 실현하였던 몇 안 되는 심리학자 가운데 한 사람이었다. 아동사고에서의 인식증진과 아울러 과학사고사에서의 인식증진 연구를 목표로 삼는 발생 기원 인식론 국제연구소를 1955년에 주네브에 설립하고 여기에 논리학자, 수학자, 물리학자, 생물학자, 언어학자와 심리학자들을 모아 종합적인 연구 프로젝트로 수행하였다. 얼마나 성실하고 생산적으로 그가 이 공동작업을 이용하였는지를 거의 300명 이상의 공동저자가 언급된 매클래플린의 저서 목록이 잘 보여주고 있다. 장 삐아제는 그의 연구성과를 절대적으로 완전한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았으며 이것은 70세 때 펴낸 자서전의 증보판을 보면 더욱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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